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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 이모작을 여는 사람들 | 지리산의 ‘소셜농부’ 고영문 씨
작성자 지리산 자연밥상 (ip:220.90.68.51)
  • 작성일 2016-05-10 09: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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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을 여는 사람들 | 지리산의 ‘소셜농부’ 고영문 씨 - “스마트폰이 가장 좋은 농기구요”


게으른 ‘소셜농부’ 고영문(50·지리산 자연밥상대표) 씨. 이렇게 자칭하는 그를 만나기 전에는 온라인 판매로 재미를 좀 봤다더니 자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농부가 게으르다고 온 천하에 말하고 다니다니 이거 미안한 일 아니냐”고 물었더니 답이 의외다.

“농부들이 팔기에 급급해 맛이 채 들지도 않은 작물을 내다 파니까 스스로 천천히 하자는 의미로 붙인 거예요.” 수줍은 듯, 멋쩍은 듯, 때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내뱉는 그의 말과 표정에는 초면의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아, 어디서 봤더라? 이 얼굴, 이 표정. 소설가 이청준과 최인호, 가수 김창완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비치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그가 손님 대접을 위해 내놓은 못생긴 곶감을 보니 그가 하는 방식의 일단이 보이는 듯했다. 감을 따서 건조기에 살짝 말린 후 천천히 자연건조시킨 결과란다. 그의 황토집 여기저기 큰 좌판에는 방추형의 길쭉한 곶감들이 차가운 바람과 겨울 햇살을 받아 마르면서 뽀얀 분을 내고 있었다. “우리 곶감 질기지요? 남들처럼 감을 깎아 이산화황으로 훈증하면 말리는 도중 부패도 없고 맛도 부드러우면서 모양도 줄지 않아 소비자들이 선호하지만 우리는 자연 방식 그대로를 고집합니다.” 자신은 느리게 친환경을 고집한다는 말이렷다.

느리지만 그의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그는 귀농 몇 년 만에 온라인으로 3억원대의 농산물 매출을 올리는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에게 한 수 가르쳐달라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심심찮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귀농학교의 강사로도 뛴다.

지리산 피아골에서 농산물 직거래로 승부


▎지리산 피아골 입구 언덕바지에 자리한 고씨의 황토집. 2억여 원을 들여 살림집과 창고 두 동을 마련했다.

마치 봄비처럼 가랑가랑 비가 차분하게 내리는 1월 하순. 지리산은 장엄한 수묵화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직 추위가 언제 또 기습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지리산의 초목들은 뿌연 물안개 속에 벌써 봄나들이를 하려는 듯 큼직한 움을 예비하고 있다. 그의 집 창으로, 마당으로 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냥 이곳에 며칠 머물기만 해도 도시의 묵은 때가 저절로 씻겨나갈 것 같은 상큼한 바람이 코끝으로 밀려왔다. ‘아, 지리산!’이란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온다.

고씨가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온 것도 겨울이었다. 2008년 크리스마스 때 그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지인의 소개로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낡은 한옥으로 혼자 들어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낡은 살림살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기대했던 ‘한옥의 운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에서 16년간 광고업에 몸담았던 그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소셜미디어 쪽으로 광고시장의 판세가 기울면서부터였다. 옥외광고 플래너로 뛰었던 그에게 위기감이 찾아왔다. 온라인 광고가 힘을 얻으면서 이미 성사됐던 옥외 광고 계약 건이 무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집과 가까운 경기도 과천에서 텃밭 농사에 재미를 붙였던 그가 처음 눈을 돌린 곳은 강원도 정선. 산이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돌아보니 석회암지대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홍천·인제·장수 등도 대상지역으로 물색했으나 때론 값이 안 맞아서, 너무 쓸쓸해 보여서, 혹은 농산물 판매처와 접근성이 떨어져 제외했다.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로 방향을 잡은 그는 청정지역인 지리산 피아골을 새 보금자리로 정했다. 그는 ‘백두대간 첫 마을’이라는 토지면 용두리 농평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토지면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지리산 해발 800m 고지에 2천여 평의 땅을 사고, 남의 땅 2천여 평을 더 빌려 오미자·엄나무·오가피 등을 심었다. 우선 기능성 약초에 승부를 걸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초짜 농부’는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해야했다. 충북 옥천의 나무시장에서 국산인 줄 알고 구입해 심은 오미자나무는 알고 보니 수입산이었다. 오미자 맛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한참을 기어올라가야 하는 산중턱 다랑이 땅인지라 접근도 어렵고 물도 끌어오기 힘들어 나무들이 말라 죽어갔다.

광고인의 DNA로 농촌의 일상을 브랜드화


▎섬진강변을 따라 구비구비 자리한 지리산 농가들. 입춘이 지나자 봄을 예비한 과수, 꽃나무들에 토실한 움이 돋아나고 있다.

친구들을 불러 곡괭이질도 하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가는 데 400만원이나 들였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경사가 심해 농평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모든 걸 지게에 지고 오르내리느라 비지땀을 쏟았다. “지금은 근처 농업기술센터에서 트랙터를 빌려 사람을 쓰면 되지만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면 트랙터도 빌릴 수 없었어요. 결국 손을 들고 산밑으로 내려올 밖에요.” 할 수 없이 첫해는 마을 어르신에게 빌린 땅에 심은 콩과 고구마를 수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디지털 시대, 소셜미디어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지리산 농부들은 매주 월요일 만나 함께 공부하고 소통하는 ‘소셜수다모임’을 갖는다.

평소 가슴에 새겼던 “챔피언은 일상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다만 링에서 인정받을 뿐”이라는 복서 조 프레이저의 격언을 되새기며 농부로서 새로운 일상을 위해 전방위로 뛰기 시작했다. 이듬해 아내와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까지 내려오게 했으니 여유를 부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결정을 머뭇거리지는 않았단다.

“공부에는 그다지 비중을 안 두거든요. 어차피 이제 공부로 승부를 거는 시대는 갔다고 보니까요.” 하필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이사를 택한 것도 새 삶에 대한 그의 결연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 아내 최문희(48) 씨도 그의 결정을 따랐단다. 그 후 해마다 결혼기념일만 되면 ‘이 무드 없는 남자’는 “아내에게 욕먹는 날이다” 하고 조심하게 된다고. 게다가 아내는 서울에서 출판사, 잡지사 일을 했던 만큼 농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우선 지리산 중턱에서 직접 채취한 쑥부쟁이와 이웃이 채취한 것들을 모아 특산물세트를 만들어 휴가철에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해 재미를 좀 봤다. 이에 힘을 얻은 그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온라인 판매에도 나섰다. 그가 막연한 기대만으로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 좌판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광고인의 DNA가 살아 꿈틀거렸다. ‘광고하되 광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물건을 팔되 사라고 조르지 않고 보는 이 스스로 마음이 동하게 하는 것’. 그는 매일 카메라를 들고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팔았다. 때로는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를, 때로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을, 장엄한 산자락에 걸린 안개와 구름과 휘황한 해돋이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강한 생명력의 과일나무와 싱싱한 무공해의 나물들을…. 그의 산속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접한 도시의 친구들은 환호했다. 도시에서의 삶이 각박해질수록 그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가 먹음직한 산나물이나 열매, 과일 사진을 올리면 ‘같이 좀 먹어보자’는 주문이 줄을 이었다.

SNS로 산골마을과 도시 중계


▎고씨 부부가 감 재배농가와 계약을 맺어 생산한 방추형 곶감을 건조기에 살짝 말린 후 커다란 채반에서 자연 건조시키고 있다.

들여다보면 그의 오늘이 단지 광고인다운 마케팅 전략으로만 이루어진 건 물론 아니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그는 젊어서 어머니를 도와 복분자 농사에도 관여했던 경력이 있다. 복분자를 술로 만들고 브랜드도 특허출원해 팔기도 했다. 또 귀농 전 서울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농림부에서 연 귀농학교에서 3개월간 합숙하며 약초 공부도 했고, 전남 농업기술원의 창업농업 교육, 농촌진흥청에서 하는 농산물 유통마케팅과정도 수료했다. 버섯종균기능사와 기계화영농사 자격증도 따두었다.

농부로서의 체력을 만들려고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뜀박질을 하곤 했다. 이미 마라톤 풀코스만 서른 번을 경주했다. 나이 50줄에 접어들지만 아직 젊고 날렵해 보이는 그의 몸이 말해준다. 디지털시대 소셜미디어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서울을 오가며 좋은 강의를 섭렵했다. 지리산 농부들과의 교류에도 힘을 쏟아 ‘함께 살아가는 재미’도 맛보고 있다. 지금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기 위해 구례인근에서 근처 하동·함양·광주 농부들까지 모여 ‘지리산 소셜수다’ 모임도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연다. 등록 회원수는 200여 명. 모임마다 30여 명이 번갈아 가며 참석하고 있다. 어영부영하다 운 좋게 오늘의 ‘지리산 뜰지기, 고영문’이 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지리산에 둥지를 틀자마자 지리산 곳곳을 발로 뛰며 지리산 둘레길 코스 조성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조사팀원으로 하동 구례간 코스개발에도 참여하며 지리산 토박이들과 친해졌다. 귀농인 13명과 함께 ‘지리산나물 힐링협동조합’을 만들어 쑥부쟁이를 공동 경작하기도 했다. 2011년초 지리산을 위협했던 산불이 발생 22시간여 만에 진화됐을 때도 고씨가 화재 현장에서 트위터로 화재 속보를 전하고 진화작업에도 참여해 그의 지리산 사랑을 널리 알렸다.

또 있다. 2012년 8월 볼라벤 태풍 때의 일. 강력한 태풍의 영향으로 재배 중이던 배가 모두 낙과해 근심 중이던 후배 농부의 배를 이틀 동안 절반가격에 220박스나 팔아줘 근심에서 벗어나게 했다.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4가지의 툴을 총동원했는데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단다. 지난해 매실 파동 때도 ‘소셜농부’의 위력을 과시했다. 대형미디어에서 매실에 대한 부정적 방송을 하자 풍년이었던 매실 가격은 속절없이 추락했다. 매실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했지만 그는 문제없이 제값에 소진시키는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것.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제대로 작동한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직거래를 염두에 둔 마케팅을 생각해 모든 SNS 계정에 등록,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이뤄진다. 매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지리산 여기저기를 돌며 새로운 아침을 카메라에 담아 거의 실시간으로 온라인 친구들에게 전한다. 그가 한 교육장에서 들려준 ‘소셜농부의 성공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자신이 판매하는 농산물의 브랜드 네임을 잘 정하라는 것. 콘셉트가 확실히 드러나게 하라는 얘기다. 청정지역의 자연먹거리를 떠오르게 하는 ‘지리산자연밥상’이라는 브랜드가 오늘날 매출의 절반을 기여했다고 그는 평가한다. 둘째는 상품 홍보에 급급하지 말라는 것. 홍보보다 신뢰확보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온라인의 게시물은 매일매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포스팅을 해야 네티즌들이 게시자의 글과 사진을 궁금해하며 기다린다는 얘기다. 넷째는 온라인에서의 모임이나 교류는 오프라인으로 이어져야 끈끈해지며 나중에 강한 유대감을 발휘한다는 것. 그래야 자신의 조직이 되고 미래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다섯째, 소비자가 농산물을 체험적으로 접하게 하는 오프라인 기회를 적절하게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의 판로개척과 새로운 판매 툴(도구)을 알기 위해 쉬지 말고 공부하라는 게 여섯째 주문이다. 그는 “나에겐 스마트폰이 가장 중요한 농기구”라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여러 감 재배 농가와 계약을 맺어 곶감 5t을 전국으로 판매했다. 지난해 설에는 쑥부쟁이 말린 것 5천 봉지를 한살림에 납품해 1주일 만에 판매했단다. 200평짜리 9개동의 비닐하우스와 1천 평의 노지에서 수확한 쑥부쟁이로 차와 부각도 만들어 팔았다. 또 매실과 산수유를 기르기 위해 땅 1천 평씩을 각각 임대했다. 지난해부터는 노동부에서 실시하는 귀농인턴제도의 도움에 힘입어 5개월 동안 인부를 쓰고 정부로부터 50%의 인건비를 지원받았다. 그는 현재 월 280만원을 들여 두 명의 남녀 인부를 고용하고 있다. 기타 고사리와 취나물 등 산채, 매실 발효액, 산수유, 개똥쑥도 함께 판매했다. 이렇게 그가 올리는 연간 매출액은 3억원 정도다.

올해에는 기관지 천식에 좋다는 곰보배추를 600 평쯤 심어 상품화할 예정이다. 그는 이제 택배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지리산 피아골 초입 ‘내 집’에 살고 있다. 화개장터에서 차로 5분거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깊은 자연의 멋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사이 2억원을 들여 황토로 된 살림집(99㎡)과 농산물 창고를 두 동(각 66㎡) 지어 연결시키니 제법 규모가 큰 멋진 집이 됐다. “앞으로는 쑥부쟁이 부각, 곰보배추발효액 등 가공상품을 통해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힘쓸 겁니다. 농산물을 생으로 파는 데는 한계가 있고 부가가치도 너무 적어요.”

고씨는 생산기간이 긴 농산물은 친환경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과정을 소비자가 함께 지켜보게 하면 자연히 애정과 신뢰를 갖고 주문하더라고 덧붙인다. “산골짜기에서 나는 그 좋은 작물을 모두 제가 키울 수는 없죠. 유기농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재배한 것을 착실하게 모아서 세련된 패키지에 담아내는 작업, 합당한 가격에 팔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도시물 먹은 귀농인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죠.” 초보자들이 30년 넘게 농사를 해온 전문 농부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이들과 힘을 모아 서로 잘할 수 있는 것들로 경쟁력을 높여야 귀농인도, 원주민 농부도 함께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농업과 서비스의 융복합이 필요하다


▎고씨가 온라인 직거래로 판매 중인 고사리, 쑥부쟁이, 산수유 등 지리산 산나물과 약초들.

“이제 시골에서도 문화적인 욕구가 크게 늘어 수요가 많아졌어요. 그것을 소화할 공연장이나 교육시설이 얼마나 크고 많아졌는데요. 서울에서 바이올린을 했으면 여기서 가르치며 연주도 하고, 목수를 했다면 여기서 공방을 열어 함께 만들고 판매도 하면 돼요.” 예전의 시골이 아니고 인구 구성원도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인구 2만7천명인 구례의 경우 매년 170여 가구가 도시에서 들어오고 주변 하동은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많은 마을이 됐다니 맞는 말이다. 고씨 역시 귀농한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지리산학교에서 목공예와 사진을, 아내 최씨는 퀼트와 도자기 등을 배웠다. 또 산나물과 약초가공에 필요한 요리솜씨와 지식을 터득하기 위해 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요리강습도 들었다.

그가 지리산의 현지인 및 귀농·귀촌인들과 추구하는 작업은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농촌의 6차 산업화(1차 생산·2차 가공·3차 서비스 산업 융복합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야만 무한 경쟁시대에 생존할 수 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리라. “올해는 5일장이 서는 근처 화개장터에 사무실을 마련해 귀농학교도 열고 싶어요. 교육도 하고 친목의 장소로도 활용하고요. 도시사람들이 원하면 장 봐주기 대행사업도 하구요.” 그의 넘치는 아이디어와 의욕은 올해도 고공비행 중이다.
“지리산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메마른 도시인들에게 지리산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보내면서 함께 사는 즐거움을 나눌 겁니다. 그리고 제 또 다른 목표는요,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해 ‘아이언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수영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그는 올해도 매년 하듯이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 정도 완주할 예정이다. 달리기가 주는 몰입감이 아주 좋단다.


이제 머지않아 지리산 둘레길 섬진강변에는 벚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몰려들 것이다. 3월 산수유축제도 곧 열린다. 그의 사업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하고 싶은 것을 이리저리 시도하고 즐기며 사는 ‘게으른 소셜농부’. ‘오래된 미래’로 가고 싶어 귀농·귀촌하려는 이들이 고씨 부부와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면서 자꾸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그가 뻗어나갈 앞날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고혜련 -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에서 국문학을,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중앙일보 기자, 차장을 거쳐 파이낸셜 뉴스 문화부장과 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신문, 취재와 기사작성> <자연에 산다> <매스커뮤니케이션개론> 등이 있다. 현재는 홍보 및 콘텐트 기획회사인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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